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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회화의 예술 인터뷰
서상익
작성일 : 12-11-21 00:38  조회 : 1,446회 
대가들에 대한 오마주 - 회화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


이: 이번 전시 출품 작품들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몇몇 작가들의 얼굴을 그리셨어요. 특별한 이유라도?

서: 이번에는 바스키아, 척 클로스, 폴록, 프란시스 베이컨, 뒤샹과 워홀입니다. 우선은 제가 좋아하고,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작가들이겠죠. 일종의 오마주이죠. 미술사적으로 보면 가장 근래의 작가들에 속하고 개개인들이 이뤄낸 혁신이 큰 작가들이죠. 작가 자체가 하나의 아이콘이 된 작가들이죠. 작품 배경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그리면서 기법도 좀 다양하게 시험해 보았어요. 오일 스틱 쓴 것도 많이 하고 물감 뿌리기도 해보았어요. 이 작가들이 어떤 느낌으로 작업했었을 지 상상도 되고 더 친밀하게 느껴졌어요.

이: 그렇지요. 당시는 회화자체를 오브제로 바꾸는 대단한 실험이 행해지던 때니까요. 지금 선생님 작업을 보면서 다시 드는 생각이, 어쨌거나 지금 대부분의 회화는 메타 페인팅의 영역으로 다 넘어와 버렸다는 점이네요. 선생님 작품이나 남경민 선생님 작품이 대표적으로 회화의 역사를 직접적인 전제로 해서 나오는 것이잖아요. 미술관 시리즈는 이런 축적된 회화의 역사를 둘러싼 문제이지요?

서: 회화를 둘러싼 질문에 어떤 답을 드려야 될까 고민을 했었는데, 결국은 저도 묻는 식의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제 그림은 지금의 회화에 대한 제가 가진 생각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그림 스스로가 묻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미술관 시리즈도 원래는 미술관의 작품들, 미술관의 공간, 그 공간이 가진 미학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시작한 작품입니다. 요즘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저에게는 아주 좋은 놀이터가 되는 것 같아요. 거기서는 어떤 비현실적 상황을 설정을 하든, 미술관을 배경으로 어떤 그림들을 그려놓든 거기에 대해서 전 자유롭다는 거죠. 미술관에서 추구하는 모든 실험들을 그림 속 공간 안에서 하고 있어요. 익숙한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데, 익숙한 듯 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광경이고 공간입니다.

이: 미술관이 일종의 실험실 같은, 놀이터가 되었다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네요. 실제로 화이트 큐브 자체가 그렇게 되었잖아요? 실제의 삶과 격리된 순수 미술만의 장이 형성되면서 미술은 자체의 형식 이론을 발전시켜나가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잖아요. 감상의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블랙페인팅에서부터 그 아이디어가 시작되신 건가요?

서: 어떤 역사가 만들어 놓은 명품, 아우라를 가진 그림들은 제가 검은 페인트 칠을 하더라도 그 명성은 사라지지 않죠. 오히려 명성이 너무 대단해서, 실체를 넘어서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에서 페인트를 부어버리는 그런 그림도 그렸던 거죠. 회화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가지면서도 계속 그려나가면서 느낀 것은 제가 그림이 가지는 힘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믿게 되었다는 점이죠. 회화가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까라는 의문이 이제 긍정적인 쪽으로 답들을 얻어가지 않고 있는가 생각해요. 그림을 믿고 안 믿고의 종교적인 차원에 비교하지면 이제 좀 신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막연히 성경 읽고 예배 올리는 거에 재미를 느끼던 청년부 아이였는데 이제 청년부 선생님까지는 온 것 같아요.

이: 개인적인 흥미에서 회화 장르에 대한 신뢰로 나아갔다는 말씀이죠. 더불어 내러티브에 위주의 구조에서 다양한 형식 실험으로 바뀌어 가신 것 같아요.

서: 네. 그 전에는 그리는 재미를 느끼는 시간보다 이야기를 짜내고 디렉팅을 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도 많았구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특별히 어떤 내러티브를 안 넣고 화면만 구성해서, 어떤 구도, 색감, 터치, 어떤 색을 쓰더라도 이걸 두껍게 바를 건지, 섞어서 쓸 건지 하는 소소한 결정들이 더 중요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이 편해졌어요. 그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리는 거죠. 내러티브도 그러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넣게 되고요. 작년 재작년에 비해서 작업량도 많이 늘었어요. 작업에 대한 집중도도 오히려 높아졌어요.



구상과 추상, 어느 것이든 화가의 순간적인 감각이 중요



이: 배경으로 등장을 하고 있지만 몇몇 그림에는 추상화가 등장하네요. 네 회화에서 추상과 구상의 경계 문제도 사실 굉장히 궁금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작업을 해보시니까 어떤 차이가 나는 것 같으셔요?

서: 이번 작품들을 그리면서 리히터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구상과 추상, 이것저것 경계를 넘나들면서 느꼈을 그 쾌감. 정말 행복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에 제 작업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들이 많았었는데요. 틀이 생기면 구속을 받게될까 봐 변덕을 많이 부렸던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자유롭게 작업을 했던 작가들을 리서치 하면서 조금이나마 그런 걸 느껴보고 있죠. 재미가 있더라구요. 추상과 구상의 차이점을 말하라면, 우선은 구상은 보고 그리든 상상을 해서 그리든 어떠한 원형이 있죠. 얼마나 내가 추구한 원형에 가까운가 혹은 내가 의도한 대로 변형이 가해졌는가 하는 기준점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것이고, 추상에서는 아무래도 그 순간의 감각, 그때의 느낌이 중요하겠지요. 가장 감각적인 그림이 추상이 아닌가 생각해요. 처음 추상화가 등장했을 때는 구상화와 엄청난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요.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추상을 하든 구상을 하든 얼마나 자기만의 감각과 생각으로 표현을 해내는가가 중요해지니까 경계라는 게 명확히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는 어느 정도 원형에 충실 해야 되지만, 저는 사진을 보고 그리지만 변형을 많이 그 변형에 있어서 기준점은 그 때의 느낌과 감각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 경계가 리히터처럼 많이 흐려져있죠. 추상화에 대한 거부감은 미술관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미술관이 놀이터 역할을 해주면서 사라졌지요. 하다 보니 구상이나 추상이나 어차피 물감으로 발라내는, 결국 둘 다 손으로 하는 작업이고 또 그 결정권은 그 순간의 나의 감각에 달려있다는 데에서 다르지 않다고 느꼈죠. 둘이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적극적으로 기존의 작업들도 오마주를 해보았지요. 그러면서 훨씬 더 많은 가능성들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 리히터는 추상화의 프로세스를 유물론적으로 해석을 한 거죠. 물감을 쭉쭉 깔아보고, 데칼코마니도 해보고 유리 뒷면에다가 물감을 짜보고….. 리히터의 추상화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처럼 유심론적인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드러내는 매우 유물론적인 추상화죠. 그런데 마띠에르를 만들고, 색채를 쌓고, 터치감을 쌓으면서 선생님 작업의 프로세스는 훨씬 역동적으로 된 것 같아요.

서: 좀 더 얌전하고 꼼꼼하게 그리다가 점점 더 마띠에르도 살리고 작업법이 많이 지저분해지고 많이 돌아다보니까 작업실도 좁게 느껴지고. 그러면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훨씬 다른 거 같아요. 그 전에는 뭔가 명상을 하듯이 기준에 충실하면서 집중력을 안 놓치려고, 끈 하나를 계속 잡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이 끈 저 끈 다 늘어뜨려놓고 막 잡아당기는 느낌이어요. 작업하는 재미가 훨씬 큰 것 같아요.



회화, 몸의 감각을 기억하는 예술



이: 2012년 가을에 미디어 시티 서울부터 광주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 등 미디어 편향적이라고 할 만큼 미디어 아트가 부정할 수 없는 대세인 것처럼 느껴져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 제가 학부나 대학원 다닐 때 많은 친구들이 미디어 아트 쪽으로 갔지요. 매체가 다르다고 해서 전 사실 그걸 다르게 보지는 않거든요. 그게 얼마나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쟁점이라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감각말입니다. 감각적인 부분에서 좀 소홀히 대하는 그런 작업에 대해서는 그림도 그렇고 미디어도 그렇고 좋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좀 더 이야기의 시제를 앞으로 당겨볼까요?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이 회화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어떤 측면에서 이게 필요한 걸까요? 회화 없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서: 물론 회화가 삶의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라고 보진 않아요. 얼마 전에 작가와의 대화할 때 한 분이 미술품을 보면서 삶이 굉장히 풍요로워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관람객들이 있다는 게 굉장히 고맙고 뿌듯했죠. 우리 나라는 자본의 논리가 굉장히 강한 나라잖아요. 거기서 생기는 균열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예술이 주는 정신적인 풍요로움들이 이런 균열을 매꾸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분명히 예술은 계속해서 유지가 될 것이고 페인팅도 새로운 매체가 나올수록 그 성격들이 더 분명하게 다져질 것 같아요. 앞으로도 새로운 매체가 계속 나오더라도 페인팅은 자기의 길을 공고히 다져가지 않을까 그렇게 확신을 하고 있어요. 저한테 왜 계속 그림을 그릴 거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제가 계속 흐려졌다가도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면 다시 선명해지고 다져진다는 그 느낌 때문일 거 같아요.

이: 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일대의 소동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회화의 평면성에 관한 이야긴데요. 사실은 재현 이론을 포기한 순간에 서구의 회화 이론은 회화의 평면성이라는 문제에 몰두해 왔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도대체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평면적인 회화를 하시는 입장에서 그게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셔요?

서: 전 사실은 미디어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그런 고민이 더 클 것 같아요. 사실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만지고 편집하고 하는 것만 해도, 다른 매체들이 회화가 가지는 장점들을 많이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겠어요? 미디어작업 같은 경우는 더더구나 물질이 잡히는 게 없고 데이터를 만지는 것일 뿐 실체가 없기 때문에 더욱 환영이란 느낌이 더 강하죠. 사실 회화는 평면이라고 얘기하지만, 천 이라는 물질이 있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르는 행위도 훨씬 더 구체적이죠. 그래서 저는 미디어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고민이 더 심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최근에 어떤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하는 얘기가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미디어는 실체가 없는 거다라는 거였어요. CD 한장으로 존재하고 01010으로 해소되는 정보라는 말이죠. 그런데 과연 그 물질적인 실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잖아요? 예술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감각을 느끼는 정신의 문제이고 이미지의 전달작용인데, 매체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서: 사실 역사적으로 평면성과 환영 대한 논의는 이제 많이 걸러졌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문제보다는 페인팅이 어떻게 감각을 논리화 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진 것 같아요. 반면 미디어작업은 새로운 매체가 나오고 매체가 가졌던 신선함이 사라져 버리면 굉장히 공허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회화가 디지털 작업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정확하지 않음, 딱 떨어지지 않음, 균열, 불균형에 있다고 보거든요. 아무리 포토리얼리즘이라 하더라도 생길 수 밖에 없는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 - 이게 또 하나의 오리지널리티를 형성해준다고 보거든요. 저는 사실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대해서 굉장히 옹호하는 편이죠. 디지털 매체랑 더 친숙하게 자란,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만 하더라도 감성이 저와는 분명히 다르더라구요. 그렇지만 단지 디지털/아날로그라는 이름으로 구별을 하는 것도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죠. 몇 달 전에 문화관광부에서 전문 업체와 같이 디지털 페인팅 툴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발표했어요. 작가의 모션을 인식하고 조작하기에 따라서 터치가 달라지는 식의 프로그램이죠. 더 나아가 출력했을 때 마띠에르까지 느껴지게 할 수는 없겠느냐 하는 말도 나왔죠. 문광부에선 이걸 누구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로 만들어서 교육용으로도 쓰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한 아동심리학 전문가가 말씀하시더군요. 아이들이 이렇게 디지털로 가상으로 그렸을 때는 감각이라는 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앉아서 난장을 피고 손끝으로 직접 느꼈을 때 뇌를 자극하지, 가상으론 뇌가 반응하지 않는데요. 아이들이 물론 디지털에 친숙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몸을 잊지는 않을 거란 말이에요. 자기의 몸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자라가면서 분명히 그 균열과 물질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편입니다.

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해주셨어요. 감각이라는 게 중요하죠. 감각의 실체, 감각의 담지자로의 몸이란 건 인간의 본질이죠. 인간이 몸을 가진 존재인 한 감각을 다루는 예술인 회화는 영원한 존립근거를 갖는다는 말씀이요. 선생님, 오늘 말씀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