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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작업노트
서상익
작성일 : 13-05-22 11:21  조회 : 1,280회 

 
 
 
자연의 법칙

2013. 4. 12.


우린 이 세계를 자신의 의식과 자유의지로 인식하는 세계라 쉽게 착각한다. 흔히들 무의식을 의식의 거울, 혹은 뒤틀림이라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식의 세계 또한 쉽게 흔들리고 스스로의 의지를 벗어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변화와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의지라 믿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거부할 수 없는 무의식의 발현이자, 의식의 변화일 때도 있다.
자연의 법칙에 예측은 언제나 보기 좋게 빗나간다. 우린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어떤 규칙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예측은 쉽게 빗나가고 예측한다 하더라도 우린 그 힘을 막을 수는 없다. 단지, 생존하기 위해 대비하고 피할 뿐이다. 자연은 살고자하는 생명의 본능을 시험할 뿐 우리에게 정해진 규칙이 없음을 언제나 가르친다. 자연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깨달을 수 있는 법칙은 언제나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큰 자연의 기운 앞에 겸허해지고 생명의 소중함과 기운을 받아들여야 한다.

난 5살이 되어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장애를 가진게 아닌가 심히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난 언어를 깨닫기 전부터 그림을 그렸다. 언제나 어두운 방에 누워 닥치는대로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지난 후 난 항상 그림은 나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난 행복하기 위해 그리지, 그려야만 행복한 건 아니라고.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언어화되지 않은 의식을 가진 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처럼 그림은 내게 있어 어떤 선택이 아닌 내 삶에 주어진 무거운 책임이자 의무임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행복해서도 행복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난 어떻게든 그림을 그려 나가야한다.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좋은 그림을 그리느냐 그저 그런 그림을 그리느냐는 결국 내 모든 시간을 그 책임을 다한 다음의 문제다. 어쨌든 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내 생명을 부정하는 것이다. 신내림을 받은 자가 무속인 으로서의 삶을 부정하면 그 생명이 위협을 받듯이 모두의 삶에는 그 생명이 향해야하는 길과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우린 우주와 생명의 기운 안에 동화되어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

타고난 운명이란 오만함이 아닌 미미한 존재로서의 책임감일 뿐이다. 비록 최고의 그림을 그릴 순 없더라도 그 책임을 다해갈 때 내 삶에 주어진 최선의 그림을 만날 수 있으리란 작은 기대와 희망이다.

왜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림이 가지는 몸의 언어로서의 매력, 무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 재미있으니까 등 많은 답들을 이야기했던 듯 하다. 하지만 이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이 이것인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내 삶이 왜 이 길을 향하게 되었는지는 나 또한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궁금해하며 그려나갈 것이다. 옛 선인들이 하늘의 이치를 그리도 궁금해 한 것처럼 이제 내게 주어진 하늘의 이치를 궁금해하며, 그냥 받아들이며 평생 궁리하며 살아야한다. 이제 이 질문에 대답은 ‘나도 그게 궁금하다’라는 대답을 해야 할 듯 하다.

앞으로 자연이 나를 어떻게 시험하고 이끌지 모르지만, 그 운명이 너무 가혹하지 않기만 바래본다. 혹은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내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란다.

자연의 법칙에 자비심은 없다. 하지만 그 자연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끝없이 그 생명의 기운안에서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