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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익숙한 풍경'전 작업노트
서상익
작성일 : 13-07-17 00:11  조회 : 1,293회 

 
 
 
익숙한 풍경 뒤
 
- 2013. 7. 14 작업노트


‘익숙한 풍경’이란 제목으로 미술관 시리즈를 진행해 왔었다. 화이트 큐브 안에서 생동하는 그림과 관람객을 그리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과 공간, 관람객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흥미도 있었다. 익숙하지만 낯설기도 하고 그 의미가 궁금한 풍경이었다.


2013년 내게 익숙했던 사고방식과 논리, 인식의 변화를 요구했다. 의미를 헤아리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부딪히며 받아들여야하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고 그 법칙을 헤아리려 애써도 그 자연을 막을 수는 없는 것처럼, 논리와 인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언어는 사고의 세계에서만 유효할 뿐 우리 삶의 변화와 그 생명력을 막을 수는 없다. 자기반성과 사고의 책임에 대한 회피가 아닌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자가 모두 자신의 사고의 틀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한계와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이 존재할 것이다. 그 순간 익숙하기만 했던 풍경은 전혀 익숙치 않은 것으로 변한다. 소설가 하루키는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 ‘두 개의 달이 뜨는 순간’ 이라 했고, 슈이치는 ‘터널을 빠져나가는 순간’, 가수 장기하는 ‘달이 차오른다’ 라고 노래했다. ‘익숙함’의 고요함뒤에 숨은 폭풍. ‘익숙함’의 잔혹함이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익숙한 풍경’ 시리즈에서 ‘Another day'라고 이름 지은 변화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 변화의 순간은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일 것이다. 시간의 단위로 헤아릴 수 없는 그 순간, 변화는 그렇게 일어난다. 물론 변화에 대한 예고는 조용히 서서히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언어를 가짐으로써 자연의 신호에 둔해 진 것처럼, 우린 자신만의 언어와 사고에 갇혀 그 예고를 잘 듣지 못한다. 그래서 그 순간을 두려워 외면하기도 하고,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기도 한다.
난 그 찰나에 어떤 문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그 문을 통과해 익숙한 듯 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로 빠져들기도하고, 문을 통해 다른 무언가가 침투해 삶을 변화 시키기도 한다. 그림이 문이 되기도 하고, 문이 그림이 되기도 한다. ‘익숙한 풍경’속 부유하던 관람객들은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켜줄 작은 문을 찾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색을 배제해 보았다. 색을 우리에게 익숙한 현상이자 생(生), 동(動)이라 한다면, 색이 사라진 형상은 사(死), 정(停)일 것이다. 흑백사진이 가지는 죽음의 미학처럼 색이 사라진 형상은 죽음이자 거리감 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 찰나 세상은 죽음과 정지를 거쳐 새로운 색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색은 곧 익숙함으로 변해가겠지만, 그 찰나는 언제 찾아올 지 알 수 없다. 자연은 그렇게 끝없는 거듭나고 있다.

자연의 법칙에 자비심은 없지만, 생존하길 바라는 애정은 가득하다. 길을 잃었을 때 길이 보이고, 체념하는 순간 내가 보인다. 언어 이전의 소통을 갈구하며 우린 너무 많은 말을 한다. 지금도 불필요한 말들을 쏟아내는 불편한 마음이다. ‘익숙함’속에서 나태해 지기 보다는 불편하지만 낯설게 살아가야한다. 언어 이전의 말을 듣고 싶다. 이제 보다 낮은 자세로 바라보고 겸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