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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9 - 화가의 성전 평론(한글)
서상익
작성일 : 15-11-25 04:01  조회 : 778회 
화가의 성전
 - Haily Grenet (프랑스 독립 큐레이터)    번역 - 하민



3개월 전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 중이던 ‘화가의 성전’(Temple of Artist) 연작들을 처음 봤을 때, 한 순간에 매료되었던 기억이다. 모든 것은 2012년 그가 쓰다 남은 캔버스 위에 작가들의 초상을 그들의 대표작들을 배경으로 그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화가 게르하라트 리히터의 초상화를 시작으로 그는 시간이 날 때 마다 이 작은 초상화를 꾸준히 그렸다. 작업의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감동과 함께 20세기 화가들의 환영으로 가득한 이 리스트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배경과 화풍, 사조의 화가들이 묘사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앤디 워홀을 보테로 옆에, 그리고 마티스 옆에 폴락을, 그 옆에는 뒤샹과 피카소와 뒤마까지 걸면서 최종전시를 기획한 지도 모른다. 이 모든 얼굴들이 한 방에 모여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일이다. 초상화들을 하나하나 마무리해가면서 작가는 자신이 동아시아에서 공부한 한국인이지만 서양 화가들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유명화가들의 초상 100점이 채워져야 ‘화가의 성전’ 연작은 완성되겠지만,난 역설적이게도 이 작업이 친숙하지만 복잡미묘한 작업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아시아 예술의 영향, 거대화 사회에 대한 비판, 정체성의 추구 등의 교차점들 위에서 이 작업은 무엇보다 서상익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고, 이 점이 이 작업을 특별하게 만든다.
 
먼저, 필자는 그가 재현해내는 명화에 주목하고 싶다. 발전을 위한 도전이자, 모사를 통한 회화에 대한 연구이다. 서양인인 나는 아시아 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사의 개념이 항상 흥미로웠다. 모사는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의 표현이자, 스승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화풍을 가진 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과거 규범으로 여겨지는 그림들은 부정할 수 없는 표현의 정수로 여겨졌다. 원본을 구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그 명성은 대단했다. 해박한 수집가들은 작은 크기의 모작이라도 열심히 찾아 다녔다.  결과적으로 명작들의 모사는 원작의 명성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게 되고 그 그림들의 기술과 비법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었다.

각각의 화가들의 기법에 영향을 받았든, 그들의 견고함, 삶, 시각적 혁명에 감동했든, 작가 또한 모사를 통해 이들과의 접점을 찾으려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작가가 연작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넣을지 궁금했는데, 이 질문은 현재바티칸에 있는, 1509년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The School of Athens)을 떠올리게 했다. 이는 이태리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의 가장 유명한 벽화 중 하나로,  바티칸의 사제 궁전을 위해 주문 제작된 작품으로 1509년에서 1511년에 걸쳐 그려졌다. 철학을 표현한 작품으로, 이 벽화는 오랫동안 라파엘로의 대표작이자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대명사로 여겨져왔다.  과거의 위인들을 라파엘로 자신과 동료들로 표현함으로써, 당시 로마와 고대 그리스를 동시대로 만들었다. 유머와 역설로서 작가는 100개의 초상을 통해 과거의 유산을 재창조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현대회화를 만들고 있다.  그의 캔버스는 그가 초상화 속에 담아내는 작가들과 각별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된다. 위키백과(Wikipedia)에 의하면 초상화는 ‘사람을 표현하는 회화의 한 장르’ 이다. ‘초상화 그림(portrait painting)’은 그리는 행위 외에도 작품 자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초상화 화가들은 기관이나 개인의 주문에 의해서, 혹은 한 인물에 대한 존경과 애정으로 초상화를 제작한다. 초상화는 국가나 한 가족의 중요한 기록이며, 추억이다. ‘화가의 성전’ 연작을 통해 드러나는 친밀감은 초상화 속 주인공들 만큼이나 작가 서상익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려준다.

흥미롭게도 필자는 작가들의 초상화를 보며, 내가 작가들의 외모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오늘날 관객들은 작가의 삶과 밀접한 작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비엔날레와 각종 예술 상, 회고전을 통해 화가는 우리가 알아보고 공감할 수 있는 아이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워홀(Andy Warhol)은 처음으로 대중과 개인의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한 작가였는데, 결국 그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전기를 읽을 때 우린 특정한 가르침을 배제한 체 그의 일생을 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는 대중적 삶과 강하게 결부된 화려한 삶을 과도하게 드러내며 특정한 틀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며 작업하였다. 유명 가수나 배우들의 일상생활이 인터넷, 신문,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생중계되기 시작한 이후로, 오늘날 현대미술 작가들에게도 어쩌면 이러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통해 작업을 홍보한다. 그들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일요일 점심 가족 나들이 사진들 사이에 섞인 최근 전시 소식과 사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서상익 작가는 자신들의 삶보다 작품이 더 유명한 화가들의 초상을 통해 예술가들의 생존을 위한 드러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콘, 종교, 그리고 희생은 모두 ‘화가의 성전’과 연관된 개념들이다. 하지만 예술이 종교를 경계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역사적인 문제를 보자. 20세기 전반에 거쳐서 예술은 진취적이고 이성적이며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왔고, 이는 예술이 더 이상 신학이 아닌 현대 철학, 자유주의 혹은 극단적 정치적 사상, 사회학, 대중문화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를 보자면, 예술을 후원하는 것은 더 이상 수세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교회나 종교단체가 아니다. 게다가 윤리의 문제도 결합되어 있다. 많은 진보적인 사상가들은 몇몇 종교들이 배타적 사상과 전쟁을 조장한다고 지적한다. 21세기 초반은 맹신적이며 종교적인 정치사상으로의 회귀로 얼룩진 위험한 시기였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이든 신보수주의 기독교 근본주의든, 이들은 새로운 예술과 사상에 호의적이지 않다. 또한 종교단체들은 여성과 성적 소수자에 대한 진보적 사상과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종교 교파의 도덕교육은 예술가들이 바라는 삶과 부합하지 않고, 대조적으로 예술계는 호의적이고 관대한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철학자 시몬 크리첼리(Simon Critchley)는 예술을 ‘종교적 기억을 동반한 불안한 무신론’의 신념의 체계라 말했다. 종교적 믿음은 지성의 결여로 보여지지만 예술의 의미 자체는 종종 신념의 문제로 결부된다. 솔 르윗(Sol Lewitt)은 1967년 ‘개념 미술에 대한 단평’(Sentences on Conceptual Art)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념주의 예술가는 이성주의자보다는 신비주의자에 더 가깝다.” 모든 종교가 상징이나 예배 도구들에 의미를 부여하듯이 예술 또한 오브제와 이미지에 개념적 의미 부여를 한다. 한 작가가 필자에게 자신의 추상화는 공간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고 하거나, 형광 파란빛의 조각이 소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그의 말을 필자 역시 믿기 시작해야 한다. 작가가 의도한 것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논쟁이 있더라도, 그 작품은 그 어떤 것이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작가 의도와 믿음이 작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유를 이어가자면, 작품의 궁극적인 의미와 미학,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예술가, 큐레이터, 평론가의 해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마치 랍비, 이슬람 사제, 신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에 성당이나 교회 대신 갤러리에 간다. 그리고 예술의 일반적 용어에 종교적인 비물질 경향들이 깊게 담겨있다. 합리주의자나 무신론자는 받아들이기 힘들 ‘영적’, ‘승화’, ‘숭고함’등의 단어들이 전시리뷰나 언론기사, 전시안내서에 자주 등장한다. 2010년 뉴욕 MoMA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회고전 ‘The Artist Is Present’에서 수천명의 관람객들이 로비에 설치된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마주하기 위해 몇시간씩 줄을 섰다. 작가 마리나는 예루살렘이나 로마로 향하는 성지순례 행렬이 연상된다며, 이를 종교와 흡사하다고 묘사한 바 있다…

종교성이나 헌신 등의 개념 말고도 각각의 초상들은 작가 서상익이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바람, 작가로서의 역할 등 숨겨진 내면들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 미술의 무대 위에서 그의 위치와 소속감을 나타내주기도 한다. 초상들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스타들의 포스터로 가득 찬 10대들의 방처럼,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큰 의미와 상징성을 가질 것이다. 또한 작가에게 ‘화가의 성전’은 존경하는 거장들로부터의 연결고리를 끊고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자 시도이다. 이 작업은 작가가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할 때 스스로가 자아를 확립하고 발전시켜야 했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적인 문제이지만, 많은 작가들이 이런 정서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이 작업은 정체성의 질문을 예술가들의 사회적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자기확립의 문제로 옮기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또한 벤담(Jeremy Bentham)의 파놉티콘(Panopticon) 개념처럼 시간과 공간을 모두 통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파놉티콘은 한 명의 감시자가 수용자들 모두를 감시할 수 있는 원형 감옥을 일컫는데, 벤담은 이를 ‘정신으로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의 모형’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각각의 초상화는 작가 서상익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화가의 성전’은 결국 서상익과 동시대 작가들의 자기 계발 의지를 담고 있다; 동시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 독특하고 새로운 창작의 길을 찾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연작에 대한 필자의 해석이다. 친밀감, 유대감과 연결고리 등은 그의 작업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들이다. 놀라운 기술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서상익의 캔버스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드리핑 회화만큼이나 추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