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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희미한 날들(상해 개인전) 전시 서문(한글) - 윤두현
서상익
작성일 : 15-11-27 03:37  조회 : 742회 
동시대성이란, 그 시대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거리를 유지하는 자신만의 시간과 맺는 하나의 관계이다.  _ 조르조 아감벤

상하이에서 갖는 서상익 작가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2012년 이후 최근까지 근 4년 동안 전개해온 여러 갈래의 작업들을 한 전시공간에 망라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각 작품들의 시간적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회화 작가로서 그가 품어 온 고민의 궤적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또 그제서야 다소 무질서해 보이는 각 작품의 맥락들도 우리 앞에 그 나름의 정연한 체계를 드러낸다. 크게 나눠보면, 먼저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작업으로 작가적 현실과 고민을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의 요소들을 적극 끌어들여 비현실적 상황, 공간으로 구성하거나, 동물들을 등장시켜 현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연의 법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연작들이 있다. 다음으로 미술관 풍경으로 시작돼 일상의 익숙함과 낯섦을 교차시켜 미적 긴장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익숙한 풍경” 연작, 회화의 전통에 대한 백과사전적 탐구와 오마주로 작업실에 뒹구는 자투리 캔버스에 자신이 좋아하는 회화 작가들의 초상-그가 처음 그린 작가는 게하르트 리히터였다-을 그리면서 시작된 “화가의 성전” 연작 등으로 이어진다.

서상익은 화면 안에 연극적 공간이나 상황을 구축하고, 이로써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의 작가적 고민들을 특유의 우화적이고도 냉소적인 유머로 빚어낸다. 그렇지만 작가가 화면 안에 구축하고 있는 상상의 공간은 안정되고 틀 지워진 완성체가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지탱하며 이리저리 떠밀리고 부유하는 불완전한 주체를 표상한다. 이런 점에서 일상과 상상을 뭉뚱그린 작가의 작업들은 한 편의 ‘모노드라마(monodrama)’-이는 올해 초 자하미술관에서 가진 네 번째 개인전의 제목으로 쓰였다-가 된다. 화면 안에 그려낸 상상의 공간은 결코 밝거나 희망적인 이상향일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우선적으로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마다 엄습해오는 불안이나 강박, 더 나아가 회화가 예술로서 소통되고 공유되는 방식에 대한 본질적 회의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녹아 내리는 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초기에는 작가적 현실 자체에 좀 더 주목함으로써 보다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회화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문제로 확장되고 있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화가의 성전” 연작을 계기로 공간, 색채, 붓질 등 회화적 요소 자체들을 적극 실험해나가고 있다.

회화는 미술의 가장 전형적인 장르의 하나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한 때 회화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 듯 했지만, 새롭게 변주되고 분화되면서 현재까지도 미술의 중심에서 그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첨단의 매체, 형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동시대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듯, 회화의 전형성이 곧 동시대성의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체는 수단이지 목적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말처럼 동시대성은 매체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미적 인식과 성찰로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물리적 시간에 속하는 것 이상의 실제적 동시대성을 갖기 위해서는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말처럼 자신의 시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거리를 둠으로써, 그 밝음뿐 아니라 어둠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 시대, 이 순간, 이 곳에서 미술의 가장 전형적 장르의 하나인 회화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당위성에 대한 끊임 없는 추궁은 서상익 회화의 전반을 관통하는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들은 곧 자신만의 시간에 갇힌 채 그저 관성적으로 떠밀려 가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고유의 회화적 정체성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회화이자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다.
 

글. 윤두현(갤러리 기체 디렉터)